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외 2편) - 고운기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외2편)
―고비에서3
고운기
게르 지붕에 닿은 하얀 빛
기억하는 순간의 눈동자를 내게 말해다오
고비의 아가씨여
나는 사막을 모른다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가 그대의 가슴을 흔든다면
고렷적 시집 온 여인의 유전자라 여기겠다
귀축(歸竺)의 한나절
잠시 눈길을 준 젊은 승려가
지금 어디서 말 모는 지아비가 되어 있는지
살아 있는 매의 다리를 빌려다오
전령이 되기에는 늙은 나이
나는 이 사막을 한 번은 건너리라 기약하는 것이다
겨울 안부1
겨울이 깊기로는 추운 한밤의 소주 한 잔이다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나와의 독작(獨酌)
강물 위로 나는 어린 갈매기 한 마리 보고 온 밤이면 더 그렇다
홀로 깊어지고 있을 계절 같은 그대여
밤하늘로 띄우는 안부가 봄 오기 전 닿으려나 행여 한다.
꽃밭에는 꽃들이
—단원고 어린 영혼 앞에 바침
우리 아이들은
비록 험한 물살 속에 들었으나
지금
서천꽃밭에서 버드나무 우물을 길어
뼈살이꽃 살살이꽃
물을 주고 있을 것이다
원강아미가 낳은 한락궁이가
극락 가는 길을 잠시 막아
아이들의 두 팔에 힘이 오르고
아이들의 두 다리가 튼실해질 때까지
꽃밭에 물 주는 일을 시킨단다
나는 두 손으로 죄나 짓고
나는 두 발로 못 갈 데나 가고
겨울 지옥 업관에 이르러 두 손 두 발 잘릴 것이다
아이들아
물살 한 번 헤쳐내지 못한 중생이나
부디
어엿비 여겨 뼈살이꽃 한 송이
내 엎어진 가슴 위에 얹어다오
죄 많고 부끄러운 뼈 위에
살살이꽃 한 송이 던져다오
버드나무 우물을 길어
꽃밭에 물 주고 있을 나의 아이들아.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201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