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동지 팥죽 - 임성용
공산(功山)
2017. 8. 28. 17:10
동지 팥죽
임성용
메주네 누님은 얼굴이 부순방 꾸들장에 뜬 메주 볼따구에 지라죽 깨진 뒤웅박에 훌렁 낯바닥 몰랑지가 죽은 듯기 벌씸벌씸 콧등사니 우아래 썩음털털 뻐드렁니가 삐쭘 누가 웃는 낯으로 실금 쳐다보기도 어려웠던 것인데
싸전머리 국밥집 돼지 대그빡 꼴랑지에다 쎗바닥 염통 간에다 창자구 긁어모다 막소주 되로 퍼주고 시한엔 동지 팥죽 맛이 참이 일품이어서 팥죽 새알에 훈김 입김이 모락모락 끊이질 않았던 것인데
포목장수도 소장수 개장수도 그릇전 옹기전 어물전 쩔룩배기도 너도 나도 메주네 서방이라고 서방 아닌 사람이 없다고 소문이 팥죽 끓듯 자자했던 것인데
장 보러 나온 메주네 동생 얼간이 꺼멍이놈 사람들이 그저 오나가나 어이, 쩌어기 느그 매형 간다 어이, 쩌기도 느그 매형 온다 이놈 저놈 죄다 매형이라고 얼릉 넙쭉 인사를 해라는 것인데
묵다 둔 쑥떡 같은 꺼멍이놈 불뚝 지게 작대기를 들고 으뜬 씨벌놈이 내 진짜 매형인디 그려? 앵기는 대로 다 때려 죽인다 메주네 누님 국밥집 찬장이고 상이고 주발이고 뭐고 눈에 불이 씨게 박살을 내버렸던 것인데
그때사 펄펄 가마솥 동지 팥죽을 뒤집어쓴 매형들이 아이고 뜨거라, 아이고 뜨거라, 부자지가 빠지게 내빼고 그 덕분에 엎어진 국밥솥에서 돼지 뼙다구를 물고 시장통 흰둥이도 누렁이도 좋아라고 발발 뛰어다녔던 것인데
—《문예바다》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