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사라진 동화 마을 - 반칠환

공산(功山) 2017. 8. 7. 22:57

   사라진 동화 마을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 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가 남아 있지 않나니,

   한때 지구 자체가 푸른 여의주였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급수에서 비닐 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빙기 동안 취침중이니

   절대 교회문을 시끄럽게 두들기지 말거라

   너희가 부지런히 종말을 완성할 때 눈을 뜨리라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시와시학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