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

강가에서

공산(功山) 2021. 2. 21. 21:50

   강가에서

   김상동

 

 

   강물이 풀린 늦겨울, 크로마뇽인의 후예들이라 자처하며 두 친구와 내가 금호강 바닥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술잔을 기울일 때, 저쪽 강물에선 청둥오리들이 자맥질하며 무언가 오래된 이야깃거리들을 자꾸 건져 올려 시끄러웠다 버드나무들은 강물이 휩쓸고 간 지난 세월의 짐을 벗지 못한 채 하류 쪽으로 허리가 구부러져 있었고, 그 밑에선 저절로 돋아난 갓이며 미나리들이 퇴색한 풍경의 한 자락을 다시 파랗게 색칠하고 있었다 순백의 고니 떼가 머리 위로 저공비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조금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일 뿐 새와 인간과 개구리의 영혼이 무엇이 다르겠는가며 열을 올렸다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연기가 몸속에 깊이 스며들어 오래오래 향기로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으면, 차라리 산 채로 훈제가 되어 다가올 여름에 모기에게 뜯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킬킬거렸다 즐거운 하루였지만 어느새 붉은 노을이 번지기 시작한 갈대밭 사이의 얕은 강물을 건너 돌아올 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해가 생의 의미에 덧없는 그림자를 드리웠기 때문일까 저마다 오래전에 멀리 떠나 버린 가슴속의 새가 그리웠기 때문일까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 몇 방울

   나는 흐르는 강물에 보태었다 

 

 

 

금호강의 일몰(2014.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