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 이화영

공산(功山) 2024. 12. 21. 10:41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

   이화영

 

   엄마는 약을 드시고 계속 잠만 잤다

   가끔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악몽을 꾸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작나무 뼈처럼 창백한 몸에

   하루에도 옷을 몇 차례 갈아입히고

 

   고집스럽게 기저귀를 거부해서

   바지를 내리는 순간 지린 꽃 피었다

 

   목욕을 시키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투에

   완전 복장을 입혔다

 

   시공간을 잊고

   사람을 잊고

   자신의 정체성까지 잊고

   광야에서 홀로 마주한 세상 끝의 얼굴

 

   엄마에게 출구 전략이 있을까

   어느 문을 나서고 있는지

   비 내리고 춥다

 

   낡은 문갑 위에

   이름 모를 분홍 조화

   말 없는 꽃은 이쁘다

 

   한 방에 이불을 펴고 눕는다

   이불을 덮어 주며 토닥거려 주던 손길이 없다

 

   엄마

   내일은 진달래밥 지어 드릴게요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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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영(1965~ ) 전북 군산 출생. 2009정신과 표현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침향(2009),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2015),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2024) 등을 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