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스프레이
김기택
그는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은 것 같은 팔다리를 벌리고
기형적으로 뚱뚱한 등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바퀴들이 그를 밟고 지나간다
그는 바퀴들이 더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더 납작해진다
더 이상 납작해질 수 없을 때까지 납작해져서
바닥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은 모두
검붉은 얼룩을 남기며 아스팔트 속에 스며들어 있다
흰 스프레이로 그려진 허물만 도로 한복판에 남기고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숨은 신 - 한영수 (0) | 2020.10.25 |
---|---|
나무 - 고진하 (0) | 2020.10.21 |
저울 - 오세영 (0) | 2020.10.21 |
봄편지 - 김상환 (0) | 2020.10.13 |
먼 마을 - 김상환 (0) | 2020.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