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나는
김춘수
포켓이 비어 있다. 땡그랑 소리내며 마지막 동전 한 닢이 어디론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서운할 것도 없다. 세상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않다>는 <않다>일 뿐이다. 괄호 안에서 멋대로 까무러쳤다 깨났다 하면 된다. 말하자면, 가을에 모과는 모과가 되고, 나는 나대로 넉넉하고 넉넉하게 속이 텅 빈, 어둡고도 한없이 밝은, 뭐라고 할까, 옳지, 늙은 니힐리스트가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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